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송해성 감독/강동원, 이나영 주연
(여기에 쓰인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 포토에서 가져왔습니다. 주관적인 생각의 글입니다.)

우행시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비쥬얼계의 단순한 멜로물-이라는.
사실 남녀주인공 얼굴크기가 영화제목보다 더 유명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두 주인공의 얼굴크기 보다 주목할 만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일. "용서"
"용서"는 국어사전에 보면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이라고 되어있다. 어째서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우리는 덮어줄 수 있을까!
"누군가를 절대 용서하지 못할 여자"와 "누군가에게 절대 용서받지 못할 남자"가 만났다.
15살 이후로 모든 것이 멈춰버린 문유정. 그녀는 이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머니를 용서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일이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성장과정을 가진 정윤수. 과연 지은 죄나 잘못한 일이 다른 사람을 죽인-일이더라도 그는 용서받을 자격이 있을까?
이 영화를 보기 전 가지고 있던 편견을 완전히 날려준 장면이다.
나는 이 곳에서의 할머니와 윤수의 모습이 가장 인상깊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습니다."
자신이 죽인 가정부의 어머니인 할머니를 보자마자 사시나무 떨듯 벽에 기대어 잘못했습니다를 연발하던 윤수의 모습에서 잔혹하고 비열하고 성격나쁜 사형수도 "인간"이었음을 깨닫는다.
"만약 너를 죽여 내 딸이 살아돌아온다면 내가 너를 수백번이고 죽이고 내가 네 대신에 죽겠지만..."
살인은 꼭 살인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피해자의 가족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만든다. 하지만 사형이 피해자 가족의 가슴에 구멍을 메꾸어주지는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서]라는 책에 나온 사례집의 피해자들의 말도 비슷하다. 사형은 또다른 살인일 뿐. 어떠한 보복도 보상도 되지 않는다.
갈갈이 찢어 죽여도 모자랄 판에 떡까지 싸와 용서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할머니의 모습과 윤수가 나타났을 때 벌벌벌 손을 떨며 보자기를 풀어헤치던 모습. 그리고 달려가 원망도 해보지만, 결국 윤수 등을 토닥이며 "고아라고 들었다. 내가 자주는 못 오겠지만, 설날, 추석 , 명절때는 꼭 오마."라고 눈물 흘리며 말하던 모습은 진정 아름.다웠다.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똑바로 용서한다.
그것은 사실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다.
누군가를 원망함으로써 해결되는 것은 없다. 윤수의 등을 토닥이던 할머니는 어떠한 앙금같은 것이 풀어지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비밀을 죽음까지 가져간다고 그랬죠? 유치한 이야기지만 들어줄래요?"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서로의 아픔은 공유되어 간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자기 마음속의 진한 앙금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기에 굳어져버리고 변색되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다른 이에게 처음으로 보인다.
그것은 마치 연쇄반응과 같다.
나의 모습을 너에게 보임으로써 너는 나를 해방시킨다. 그리고 나는 너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해방시키게 된다. 연쇄반응처럼 커져가는 마음. 놀라운 경험이다.
안쪽에서 바깥으로 말하는 그 시점에서 문유정은 사촌오빠를 해방시켰다고 본다. 절대 그녀의 입으로 말하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사건을 입에 담는 순간, 그녀의 오빠의 죄가 가벼워진 것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이 해방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몇년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던 그녀가 푹 잘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나.
그리고 사촌오빠보다도 더 미웠던 어머니에게 윤수의 사형소식을 듣고 그대로 달려가
"엄마. 죽지마. 살아야돼. 용서하려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나에게 있어 엄마를 요서하는 일이 죽기보다 힘든 일이니까"
라고 말했다.
엄마를 용서함으로써 그녀는 진정 그녀로서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이해하거나, 납득할 수 있음으로서 용서를 하는 것이 아니다.
특별실에서 머리에 붕대를 감고 그녀의 어머니가 유정의 말을 듣고 어떻게 된 것이 아니다.
용서는 유정이만 할 수 있었다.
유정이 할 수 있는 것 중 최고로 힘든 일이였다.
윤수도 마찬가지이다. 더군다나 윤수는 용서받지 못할 짓을 했지 않은가. 그러나 그 할머니에게 용서받음으로써 다시 한번 태어났다고 그랬다.
즉, 용서는 그 죄를 덮어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죄를 자꾸 들어내고 후벼팜으로써 생기는 자기의 억압된 마음을 풀어내는 것이다.
사형-이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우리는 어째서 사형수를 용서할 수 없을까.
그리고 사형수는 누구에게 용서받아야 하는 것일까.
용서를 말하면서 사형-이라는 제도를 선택한 이유는 우리가 제도속에서 용서를 행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미래를 바꿀 수 없는 가장 가혹한 상황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형수의 죽음은 모든 이들이 그 사람을 용서하게 만드는가?
용서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용서란 자기자신의 마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죄를 들춰냄으로써 고통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나"라는 존재니까 말이다.
2896. 그도 사형수다.
그가 끌려가던 뒷모습도 굉장히 인상깊었는데..
"살아가는 싶은 가장 본질적인 인간"의 "가장 절망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기때문이다.
조금더 살아가고 싶다.고 온몸으로 말하던 모습. 다리에 힘이 풀려 두 사람의 경관이 지탱하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았던.. 그 장면. 과연 그는 죽어야 마땅한가?
사형은 가해자를 용서하는 제도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사형을 집행하는 자에게 있어서 그 정당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야만 할까?
법전? 양심? 규범? 보편적 진리?
허술한 사형집행장에서 여러 사람들의 갈등을 본다.
판결하는 자, 집행하는 자, 지켜보는 자, 살아가고 싶은 자.
과연 이 중에 용서를 해야할 자와 받아야 할 자를 구분할 수 있는가....
아니, 어째서 용서를 해야할 자가 있고 받아야 할 자가 있는 것인가.
용서란 누가 누구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해방된 마음이거늘.
억압되어 있던 것이 있어야 해방할 수도 있는 것.
그래서 판결하고 집행하는 자는 억압된 것이 없었는데, 해방한다는 사형이라는 용인된 죽음으로 제도화된 용서의 절차를 밟다보니 오히려 억압된 것이 생기는 것 아닐까나.
특별히 슬프다-기 보다 억압속에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좋은 영화였다.
처음엔 사형제도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모든 것은 픽션이였고, 사형제도-에 대해서만 보기에 주제가 굉장히 포괄적이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 나는 이 영화에서 두번정도 울었는데, 첫번째는 그 할머니가 윤수를 용서하는 장면이고 두번째는 윤수 동생 은수가 노숙하다가 시체가 되던 장면이다. 은수 역을 맡은 이 아이의 그 리얼한 입술에 ㅠㅠ 정말 슬퍼지더라.
#근데 정말 강동원은 이 영화에서 죄수복만 입고 나왔고, 잠깐 회상장면에서 이런 작업복 입고 있었는데, 저 턱선이.... 어흑 -_-;
어째서 그는 이다지도 잘 생겼는가... -_-;;;
# 죄수들도 즐기고 싶다.인건가.
동원님 타조알 머리 너무너무 귀여웠습니다.
눈싸움 정말 재밌어.보이더군요.
하지만 동원님 아파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엎쳐대시면. ㅠㅠ
쿡쿡쿡
# 뭐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영화의 위대한 캐스팅은 길이 역사에 남지 않을까 싶다.
엄청난 화면에 클로즈업된 사람얼굴이 나오는데, 남여주인공이 다른 조역들과 함께 있는 장면이라도 볼라치면,
"분명 앞에 있는데, 앞에 있는데, 앞에 있는데..."
-_-;; 원근감을 상실해버릴 수 밖에 없는 그 기괴한 크기에 대해서 나는 할말을 잃었다.
# 이 작품의 원작인 공지영씨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시간이 되면 꼭 읽고싶고나~
즐거운유희/활동사진평 l 2006/09/16 09:17
(여기에 쓰인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 포토에서 가져왔습니다. 주관적인 생각의 글입니다.)

우행시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비쥬얼계의 단순한 멜로물-이라는.
사실 남녀주인공 얼굴크기가 영화제목보다 더 유명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두 주인공의 얼굴크기 보다 주목할 만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일. "용서"
"용서"는 국어사전에 보면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이라고 되어있다. 어째서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우리는 덮어줄 수 있을까!

15살 이후로 모든 것이 멈춰버린 문유정. 그녀는 이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머니를 용서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일이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성장과정을 가진 정윤수. 과연 지은 죄나 잘못한 일이 다른 사람을 죽인-일이더라도 그는 용서받을 자격이 있을까?

나는 이 곳에서의 할머니와 윤수의 모습이 가장 인상깊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습니다."
자신이 죽인 가정부의 어머니인 할머니를 보자마자 사시나무 떨듯 벽에 기대어 잘못했습니다를 연발하던 윤수의 모습에서 잔혹하고 비열하고 성격나쁜 사형수도 "인간"이었음을 깨닫는다.
"만약 너를 죽여 내 딸이 살아돌아온다면 내가 너를 수백번이고 죽이고 내가 네 대신에 죽겠지만..."
살인은 꼭 살인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피해자의 가족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만든다. 하지만 사형이 피해자 가족의 가슴에 구멍을 메꾸어주지는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서]라는 책에 나온 사례집의 피해자들의 말도 비슷하다. 사형은 또다른 살인일 뿐. 어떠한 보복도 보상도 되지 않는다.
갈갈이 찢어 죽여도 모자랄 판에 떡까지 싸와 용서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할머니의 모습과 윤수가 나타났을 때 벌벌벌 손을 떨며 보자기를 풀어헤치던 모습. 그리고 달려가 원망도 해보지만, 결국 윤수 등을 토닥이며 "고아라고 들었다. 내가 자주는 못 오겠지만, 설날, 추석 , 명절때는 꼭 오마."라고 눈물 흘리며 말하던 모습은 진정 아름.다웠다.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똑바로 용서한다.
그것은 사실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다.
누군가를 원망함으로써 해결되는 것은 없다. 윤수의 등을 토닥이던 할머니는 어떠한 앙금같은 것이 풀어지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서로의 아픔은 공유되어 간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자기 마음속의 진한 앙금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기에 굳어져버리고 변색되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다른 이에게 처음으로 보인다.
그것은 마치 연쇄반응과 같다.
나의 모습을 너에게 보임으로써 너는 나를 해방시킨다. 그리고 나는 너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해방시키게 된다. 연쇄반응처럼 커져가는 마음. 놀라운 경험이다.
안쪽에서 바깥으로 말하는 그 시점에서 문유정은 사촌오빠를 해방시켰다고 본다. 절대 그녀의 입으로 말하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사건을 입에 담는 순간, 그녀의 오빠의 죄가 가벼워진 것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이 해방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몇년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던 그녀가 푹 잘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나.

"엄마. 죽지마. 살아야돼. 용서하려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나에게 있어 엄마를 요서하는 일이 죽기보다 힘든 일이니까"
라고 말했다.
엄마를 용서함으로써 그녀는 진정 그녀로서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이해하거나, 납득할 수 있음으로서 용서를 하는 것이 아니다.
특별실에서 머리에 붕대를 감고 그녀의 어머니가 유정의 말을 듣고 어떻게 된 것이 아니다.
용서는 유정이만 할 수 있었다.
유정이 할 수 있는 것 중 최고로 힘든 일이였다.
윤수도 마찬가지이다. 더군다나 윤수는 용서받지 못할 짓을 했지 않은가. 그러나 그 할머니에게 용서받음으로써 다시 한번 태어났다고 그랬다.
즉, 용서는 그 죄를 덮어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죄를 자꾸 들어내고 후벼팜으로써 생기는 자기의 억압된 마음을 풀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어째서 사형수를 용서할 수 없을까.
그리고 사형수는 누구에게 용서받아야 하는 것일까.
용서를 말하면서 사형-이라는 제도를 선택한 이유는 우리가 제도속에서 용서를 행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미래를 바꿀 수 없는 가장 가혹한 상황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형수의 죽음은 모든 이들이 그 사람을 용서하게 만드는가?
용서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용서란 자기자신의 마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죄를 들춰냄으로써 고통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나"라는 존재니까 말이다.
2896. 그도 사형수다.
그가 끌려가던 뒷모습도 굉장히 인상깊었는데..
"살아가는 싶은 가장 본질적인 인간"의 "가장 절망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기때문이다.
조금더 살아가고 싶다.고 온몸으로 말하던 모습. 다리에 힘이 풀려 두 사람의 경관이 지탱하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았던.. 그 장면. 과연 그는 죽어야 마땅한가?
사형은 가해자를 용서하는 제도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사형을 집행하는 자에게 있어서 그 정당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야만 할까?
법전? 양심? 규범? 보편적 진리?
허술한 사형집행장에서 여러 사람들의 갈등을 본다.
판결하는 자, 집행하는 자, 지켜보는 자, 살아가고 싶은 자.
과연 이 중에 용서를 해야할 자와 받아야 할 자를 구분할 수 있는가....
아니, 어째서 용서를 해야할 자가 있고 받아야 할 자가 있는 것인가.
용서란 누가 누구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해방된 마음이거늘.
억압되어 있던 것이 있어야 해방할 수도 있는 것.
그래서 판결하고 집행하는 자는 억압된 것이 없었는데, 해방한다는 사형이라는 용인된 죽음으로 제도화된 용서의 절차를 밟다보니 오히려 억압된 것이 생기는 것 아닐까나.
특별히 슬프다-기 보다 억압속에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좋은 영화였다.
처음엔 사형제도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모든 것은 픽션이였고, 사형제도-에 대해서만 보기에 주제가 굉장히 포괄적이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어째서 그는 이다지도 잘 생겼는가... -_-;;;

동원님 타조알 머리 너무너무 귀여웠습니다.
눈싸움 정말 재밌어.보이더군요.
하지만 동원님 아파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엎쳐대시면. ㅠㅠ
쿡쿡쿡
# 뭐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영화의 위대한 캐스팅은 길이 역사에 남지 않을까 싶다.
엄청난 화면에 클로즈업된 사람얼굴이 나오는데, 남여주인공이 다른 조역들과 함께 있는 장면이라도 볼라치면,
-_-;; 원근감을 상실해버릴 수 밖에 없는 그 기괴한 크기에 대해서 나는 할말을 잃었다.
# 이 작품의 원작인 공지영씨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시간이 되면 꼭 읽고싶고나~
TRACKBACK :: http://chdkgofkd.cafe24.com/trackback/495
-
Subject: #36.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Tracked from sentimentalist 삭제사람들마다 선호하는 영화 장르가 있고 싫어하는 장르가 있다. 그러다 보니, 늘 보는 스타일의 영화들을 많이 보게되고 간혹 다른 장르 혹은 스타일의 영화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는 경우..
2006/09/16 13:12 -
Subject: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Tracked from 네번째꾸미의 세상바라보기 삭제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일주일에 3시간, 목요일 10시부터 1시까지... 이나영과 강동원... 두 배우의 이름만 가지고 결정한 영화. 아니 솔직히 배우로서의 강동원은 잘 몰랐지만, 국내 여배우 중에..
2006/09/17 20:46 -
Subject: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Tracked from Ruler of Your Own World 삭제제목 그대로 영화 보는 내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 어제 퍼즐을 보고 난 이후여서 그런지 극과 극을 겪었다고 할까요? ^______^ 조금 일찍 영화관을 들어갔더니 삼삼오오 들어오는 커플들..
2006/09/17 23:14 -
Subject: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살인범을 미화하는건가.....?
Tracked from DONGBUM on blog 삭제감독 : 송해성 출연 : 강동원, 이나영 개봉일 : 2006년 9월 14일 장르 : 드라마 음...... 상민이와 같이 명동CGV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러갔다. 역시나 주말인지라 명동에는 사람이 많더군. ㅡ..
2006/09/25 00:00 -
Subject: 네, 저는 촌스럽게 명절에 극장 갑니다.
Tracked from Blog 삭제“
2006/10/01 13:21 -
Subject: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Tracked from La maison de cineaste 삭제이 영화가 너무나 기대되는 것은.. 후아유, 아는여자, 네멋대로 해라, 아일랜드의 여주인공과 형사의 남주인공 때문만이 아니라.. 너무나 가슴시린 원작.. 보고싶어 미칠 것 같아지는 예고편....
2006/10/01 22:26 -
Subject: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Tracked from La maison de cineaste 삭제기다림의 행복을 깨고.. 결국 이 영화를 봐버렸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좋았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을 때 생길수 있는.. 일종의 디테일의 누락은 어쩔 수 없는 것..
2006/10/01 22:28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 이거 안봤는데.....하아
2006/09/21 22:45앗..당한건가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