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전달자 - 10점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비룡소

"저는 사랑이라는 느낌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1993년 뉴베리상 수상
1994년 보스턴 글로브 혼 북 아너 상 수상

우리학교 도서관에 있던 책이다.
음..일단 청소년문학이라고 알고는 있었는데, 영..표지가..청소년과는 거리가 멀었다. -_-a
그런데 "기억 전달자"라니.
기억이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기억을 전달하는 것도 기가막힌데, 기억을 전달하는 사람이라니!
기계도 아니고 말이다. 흥미가 생기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어쩐지.. 작가의 말을 들으니 장르가 SF소설이다ㅎㅎ

1. 뭔가 잘못되어있는 마을

주인공은 조나스라는 소년이다.
소년은 평범한 생활을 하는 듯 했다.
그런데.. 점점 알 수 없어졌다.

규칙을 어긴 사람이 "임무해제"당하는 마을에서 소년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로 잰듯한 그 마을에서는 일체의 감정이 몰수당해있었다.
몽정을 경험한 그날 소년은 어떠한 약을 먹기 시작해야했고,
매일 아침 꿈이야기를 가족들과 나누어야 했고,
그 마을에서는 단어선택도 "정확"하게 해야했으며,
아이는 매년 50명씩 태어나고 있었으며,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과 직업을 선택하는 일, 아이를 낳는 일은 모두 원로원에서 정해주었다.

그 마을은 다시 말하면
갈등이 없으며, 미움이 없고, 쌍둥이도 없으며, 독재자도 없고, 도둑이나 강도도 없고,
살인자도 없으며...(아 이건 잠시 생각해봐야할지도)
잘못된 선택도 없고, 후회도 없으며, 거짓말도 없는

이른바 유토피아였다. 누구나 한번쯤 바라는 세상. 법 없이도 굴러갈 세상.
그곳은 작가의 말에 의하면 "늘 같음 상태"로 유지되는 곳이었다.

2. 그곳은 사람이 살만한 곳인가?

철저하게 배제된 감정과
 철저하게 관리되는 환경
철저하게 감시하고, 정확한 제재를 가하며
철저하게 통제되는 일련의 과정들

그래. 읽으면 읽을 수록 느끼게 된다.
이곳은..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라고.


3. 임무해제

게다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당하는 것.
규칙을 어기면 당하는 것.
쌍둥이로 태어나면 늦게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당해야 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임무해제"라는 것이다.

임무해제의 정체는
그 마을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실상은 "안락사"이다.
살인자가 없다는 것은 정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4. 조나스의 인생역전

조나스는 이런 마을에서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12살 기념식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맞게
임무를 다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마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그건 바로 "기억전달자"

기억전달자의 일은 기억보유자에게서 기억을 전달받는 것.
그리고 조나스는 달라졌다. 마을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기억전달자로부터 다양한 지혜와 감정을 전달받는 순간 조나스는 그 마을을 답답하게 여긴다.

5. 늘같음상태의 한계

늘같음상태의 마을은 예상치못한 일이 닥쳤을 때 면역력이 약하다.
면역은 바이러스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늘같음상태의 마을사람들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통제받고 있으며, 어떠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알아볼 수도 없으며, 알게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기억보유자를 한명 두어 그에게 선택권을 부여한다.

이런 허망한 이야기가 어디있나 싶다.
그 마을 사람들은 색깔도 알아볼 수 없다고 한다.
파란하늘도, 빨강 꽃잎도, 노란 나비도, 초록색 잔디도 그들에게는 오직 회색일뿐이다.

그들에게 행복한 삶이란 임무해제 되지 않고, 내가 부여받는 역할에 책임을 다하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완벽?한 삶이다.

6. 완전한 인간?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문제가 아니던가.
왜 우리는 불필요한 감정이나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거나,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면서 살아가게 되는 걸까. 나에게 이 거치장스러운 감정을 빼버린다면 난 정말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을텐데!
ㅎㅎㅎ(물론 완전한 인간의 정의에 대해 왈가불가하지는 않도록 하자)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나스의 감정흐름을 보면서 서서히 알수있게된다.
조나스는 기억보유자에게서 방대한 양의 기억을 전달받는다.
그리고 임무해제의 실상도 알게된다.
그리고 답답한 그 마을을 떠나 새로운 세상에 대해 알고싶은 욕심이 생긴다.
도망친다.
그리고 배고파진다.
춥고, 외롭다. 힘들다.


후아.
역시 인간이란 이가 빠져야 완전한 존재가 된달까.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그 감정들이 쌓이고 모이고 서로 얽히고 섥히어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되고, 사랑이 된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위해 바보처럼 열정을 다하게 된다.

조나스는 따뜻한 크리스마스 저녁의 가족이라는 기억만으로 그 어려움을 모두 이겨낸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해낼 수 있음.
늘같음상태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그것.
그것이 인간을 단시간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려놓은 원동력이다.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 대한 창의적인 적응력.


7. 완전한 사회?
그리고 완전한 인간들이 모이면 완전한 사회가 될 것인가?
도덕적인 개인이 모여도 비도덕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그러나 철저하게 통제된 사회속에서는 모두 도덕적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개인의 기억이나, 감정까지도 조작할 수 있는 사회라면.

하지만, 그건 이미 앞에서도 생각해봤지만,
인간의 삶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부분이 도려내어졌다.

그건 기계들의 사회이지, 인간의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화하지 못하는 사회란, 늘같음상태의 사회란 아주 작은 불씨에도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8. 이상 [異常] / 이상 [理想]

정상적인 상태와 다른 마을인 것인가
아니면,
생각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가장 완벽한 마을인가.

9. 내가 만들어내는 결말

적어도 나는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누군가에게 통제당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죽어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또한
고통스럽지만, 선택하는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곳에서는 아마 하루도 살아가기 힘들지도 모른다.
조나스의 힘든 여정을 이해한다.
아마 조나스는 희망의 불빛을 발견했을 것이라 믿는다.
조나스와 가브리엘은 새로운 기억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것이다.
멋진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의 따스한 기억을 아마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만들게 되었을 것이다.
기억을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기억을 만드는 진정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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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2 00:53 2009/04/22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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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4.11/16:00 대구시민회관
결국 그렇게 그리고 그리던 헤드윅을 보았습니다.
헤드윅을 알게된 건 2007년도였던 것 같습니다.
2007년도 대장금을 보고 노래가 너무 좋아서 멜론에서 찾아 들으려고 했다가
The Origin of love를 들어버렸던 것이죠.

알고보니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꾸며졌다던 그 노래!!
헤드윅 공식 홈페이지에 나온 이야기를 빌려 이야기하자면
헤드윅 작품 자체의 오리진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헤드윅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은 어쩌면 “사랑의 기원”으로 되돌아가려는 기나긴 하나의 여정으로 함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신화에 따르면 , 오래전 우리는 남자와 여자로 갈라지기 전 하나의 쌍으로 이루어진 완성체였다고 한다. 그땐 세가지의 性이 있었는데, 소년과 소년 (해의 아이들), 소녀와 소녀 (땅의 아이들), 소년과 소녀 (달의 아이들)가 하나로 붙어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완성체로서 당당한 인간이 갖는 능력에 위협을 느낀 제우스 신은 각각의 성을 둘로 갈라버린다. 그리고 사랑이란 바로 완성된 전체를 향한 열망, 즉 잃어버린 반쪽과 다시 결합하여 오래 전 그 행복한 상태로 다시 돌아가려는 열망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조승우와 오만석이라는 뮤지컬 배우의 시원한 노래실력에 빠져 헤드윅 OST를 들으면서 지내다가 알게되었습니다.

헤드윅 영화가 있다는 것을.



원제는 Hedwig and the Angry Inch(15세이상 관람가)
감독 존 카메론 미첼
출연 존 카메론 미첼(헤드윅)
       마이클 피트(토미 노시스)
       미리엄 쇼어(이츠학)


전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더욱더 헤드윅에 빠져들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뮤지컬이 먼저였겠지만, 영화를 먼저 접한 저는 뮤지컬이 너무나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서울공연이 끝났을 시점 서울에서 정기공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됐고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헤드윅이 전국공연을 자주 다녔습니다. 기대했죠. 대구에 언젠가 오겠구나!

그리고 2009년 헤드윅이 대구 시민 회관에 왔습니다.
이주광과 전혜선씨의 열광적인 오프닝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출처 : 공식 홈페이지 : http://www.hedwig.co.kr/>


1. 모노드라마
한편의 모노드라마 같은 느낌입니다.
열정의 락공연이 계속되지만, 분노의 외침이 제 귓가를 마구 두드립니다만
모노드라마 같습니다.
대극장에서 열리는 뮤지컬 처럼 무대배경이 바뀌거나, 화려하지 않습니다.
무대 배경은 "맨하탄의 3류 호텔 리버사이드 볼룸"

난 어느새 리버사이드 호텔 볼룸에서 헤드윅의 공연을 감상합니다.
그리고 헤드윅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2. 심리치료
헤드윅은 굉장히 불안정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츠학이 마이크를 잡을 때면 불과 같이 화를 내곤 합니다.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보면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는 성정체성의 약화, 그것에 따른 자아존중감 약화 등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기복이 큰 성격도 그러하구요.
하지만 심리치료의 방법중에 모노드라마가 있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과정에서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면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이주광의 연기가 신인임에도 대단하다고 느낀건 그러한 과정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소리, 표정, 행동에서 나타나는 헤드윅의 변화는 살짝 소름끼쳤습니다.

3. 영화 vs 뮤지컬
영화도 참 잘 찍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헤드윅은 역시 뮤지컬인 것 같기도 합니다. 뮤지컬이 먼저 만들어졌기 때문인가요. 껄껄껄
영상미를 보자면 당연히 영화지요. 게다가 상황설명이 영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대사에 집중을 하지 않았던 제 탓도 있던 것 같습니다. 친절한 영화이기에 좀 더 집중하지 못했달까요.
그런데 뮤지컬은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기에 그 노래의 가사들과 헤드윅의 이야기, 그리고 헤드윅을 연기하는 배우의 몸짓과 표정에 집중이 가능했고, 그 노래들의 절실함이나, 애절함이 더욱더 증폭된 것 같습니다.

4. 다름의 비애
남들과 다르다는 것의 비애
왜 우리는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하고, 차별하고, 비웃고, 짓밟을까요?
헤드윅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존재입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존재하고 있지요.
그래서 이상한 취급을 받습니다.
그는..아니 그녀는...
엄연히 살아숨쉬고 있으며, 사랑을 갈구하는 완전체인데도 말입니다.

5. 진정한 사랑을 찾아서
매슬로우는 말했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의 욕구가 가장 기본이 된다고.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인간이란 "사랑의 욕구"가 가장 강한 동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면 좋던 입맛도 떨어지는 일도 있으니까요.
사랑에 대한 욕구는 인간임을 나타내는 어떤 기준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란 단지 생물학적 sex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누군가를 그리워 하는 감정. 그것이 사랑 아닐까요?
그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던 헤드윅, 자신의 진정한 짝을 찾기위한 긴 여정 끝에
결국 듣고 맙니다. "그땐 내가 어렸었다...."던 그의 고백을.

6. 에게서 벗어나 에게로, 그리고 우리에게로.
헤드윅은 매우 이기적이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기적이지 않다면 살아가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웠을테니까요. 자신을 이용한 사람들,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손벌려 따뜻한 포옹을 해줄만큼 여유롭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점점 이츠학에게 마이크를 넘겨줄만큼 변합니다. 아니 그건 포기였을지도 모르죠.
결국 그를 사랑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는 그래.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니까 이러한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이죠.
마지막에 격렬한 "angly inch"를 부르며 발광을 하고 가발을 벗어던져버립니다. 공주님이 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가발을 말입니다. 그리고 이츠학은 가발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츠학은.. 또다른 헤드윅이었으며, 그는.. 아니 그녀 역시 진정한 모습을 찾게 됩니다.
헤드윅이 이츠학을 자유롭게 보내줍니다. 그러나 다시 찾아온 이츠학과 함께 헤드윅은 다 함께 "손을 들어"달라고 노래합니다. 관객이 좋아하든 말든 자기 이야기만 하던 헤드윅이 말이죠. 이츠학의 노래를 인정하더니 마지막에 결국 이츠학 뿐만 아니라 관객 들과 모두 함께 노래합니다.

7. 지구를 구하는 것은 역시 사랑?
사랑은 정말 위대한 것 같습니다.
사랑은 인간의 혼을 빼놓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니까요. 사랑만으로 누군가를 죽일듯이 덤벼들 수도 있고, 사랑만으로 누군가를 뼈속까지 안아줄 수도 있거든요. 사랑하기때문에 오해할 수도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화해할 수도 있죠. 사랑을 하면서 생기는 갈등도 역시 사랑하기 때문이고, 사랑을 하면서 행복한 것도 역시 사랑하기 때문이라죠.
굳이 여기에서 헤드윅을 남자다, 여자다라고 구분짓는 것도 무의미하겠죠.
사랑이란 여자에게든 남자에게든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를 주는 위대한 감정이니까요.
어느 작가가 자신이 쓰는 소설의 주제는 어쨌던간에 "지구를 구하는 것은 사랑이다!"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 작가의 소설은 사실... 굉장했거든요. 인물과 배경의 설정이 평범하지 않았다고...만 설명하겠지만요.
그 무시무시한 배경과 인물이 자라나는 엄청난 과정들.
감히 내가 생각할 수 없는 사건들.
헤드윅의 운명들.
하지만 헤드윅은 살아가요. 사랑을 찾아서.

8. 소중한 인간
헤드윅에게 측은함을 느끼지 않아요.
그의 인생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인생이 밑바닥 중에 밑바닥을 달려왔다고 하더라도
그의 불안정한 정신건강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구요.
그녀의 사랑을 찾는 대장정에 대한 결과가 미덥지 않더라도요.

반쪽을 찾아 갈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헤드윅이 존경스러워요.

헤드윅이 남긴 희망을 배웁니다.
희망을 놓지 않는건 사랑을 찾는 것 만큼 소중한 인간의 특성이니까요.

헤드윅이 좀 더 행복해지길 바라며. 2009.4.21





덧글.
공연이 끝난 뒤 헤드윅의 OST로 이루어진 또다른 락공연이 이어지는데,
이게 또 참 맛이다.
아 놔 ㅠㅠ
이런게 있는 줄 알았다면 오후시간대로 예매했을텐데...
아숩아숩 ㅠㅠ

열정적인 앙콜공연! 광분하는 관객과 배우!
아악 최고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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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5 00:08 2009/04/15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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