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아.한참만의 포스팅. 하하.
오랜만에 읽은 책 한권은 독서의 역사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초점은 바로 "여성"이다. |
독서는 현재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처럼 모든사람에게 열린 지식과 감동의 바다를 헤엄치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독서란.. 남성들의 독서와는 다르게 변해온다. 그리고 독서의 본질 자체도 변해간다.
책을 만드는 일-자체가 굉장히 힘든 먼 옛날. 당연히 책이 부와 명예의 상징이 되었을 때 부터,
대중화된 책이 지식을 전수하는 역할이 아니라 상품가치가 매겨지게 된 오늘날까지.
여성들에게 초점을 두고, 독서를 하는 여성들의 화폭과 함께 독서의 역사를 따져보다보면
"독서의 목적"이 변하고 있음을 알게되었으며,
책-독자-작가와의 관계가 지금처럼 대등하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히려 가장은 다독을 일종의 정신병으로 간주했으며, 자녀들이 그 같은 '병'에 걸리지 않도록 상당한 신경을 써다. (중략) 문학의 유용성과 해악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이처럼 격렬한 논쟁은 오늘날 폭력적인 컴퓨터 게임을 두러싸고 벌어지는 논쟁과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논쟁은 독서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양자택일적 결정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런 요구 속에서 계몽적 요구와 감상주의적 독자의 수용태도가 서로 심하게 대립했다. (본문 118~119쪽)
독서의 본질은 무엇인가. 독서를 함으로써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바는 무엇인가.
....
사실 그런 건 개인의 자유라고 본다. 무조건 계몽을 위해서 또는 감상적으로 읽기 위해 책을 읽진 않는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철저히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읽어주는 것과는 다르다)
나의 경우를 생각해보자면, 난 "즐거움"이다. 읽고 즐거워야한다. 나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책이란 쉽게 읽혀지는 판타지소설외에도 읽고나서 계몽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자극이 느껴진다면 그것도 즐거운 일이다. 또한 내가 몰랐던 지식의 바다속에서 고등어 한마리 건져올린다면 그것도 즐거운 일이다.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구체적으로 예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며, 개인마다 느끼는 즐거움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모두 각각 다를 것이다.
책이란 직접적인 생산을 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시간을 소비하는 일이지 않던가.
책에 빠져 설거지도 청소도 잊고 있는 하녀의 그림속에서 나타나듯이 세상은 생산적이지 않은 일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관대하지 못하다. 물론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_-; 책에 빠져 청소를 하지 않는 하녀를 보는 사람들은 하녀가 가지고 있는 책에 대해 그저 "시간을 빼앗는 오락거리"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그 책에 푹 빠져 정신없이 읽고 있는 하녀의 입장에서 그 책은 "소중한 인생을 즐기는 훌륭한 동반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그 정도가 어디까지 용납될 수 있을지는 ... 내가 왈가불가할 수는 없어보인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한다. 단순한 오락거리의 책을 봐야만 하는가. 그것을 올바른 독서행위라고 할 수 있는가?
독자가 책에 쓰인 것을 그대로 믿고, 책과 현실을 똑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부터 책은 더 이상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영혼의 양식이 아니라 오히려 삶에 남은 마지막 광채조차 빼앗아가 삶을 초라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책은 삶이라는 험난한 항로에서 길을 안내하는 나침반의 기능을 수행하는 대신에 오히려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 속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간다. 넘쳐나는 책 사태 속에서 올바른 책을 선택하는 것은 좋은책을 읽기 위해서 거쳐야만 하는 필 수 과정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책을 선택하는 것은 자아를 찾아가는 어려운 탐사 여행과 같은 것이 되었다.(본문 182~183쪽)
올바른 독서행위란 양서를 찾아읽고 그 내용을 꼼꼼하게 이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즐거움"을 첫번째 목표로 삼고있는 나는 사실 이해가 조금 되지 않더라도 책을 덮는다. 지금 느낀 즐거움이 다 가신 뒤에 다른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가벼워보이는 독서행위는 결국 대중 속으로 들어왔고 그 가치는 예전에 비하여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독서가 "교양"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비율은 예전에 비하면 많이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넘쳐나는 책 사태 속에서 올바른 책을 선택하는 것은 다독-후에 안목을 기르는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내가 관심있는 분야가 어떤것이며,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어떤 문체를 가진 작가를, 어떤 내용의 책이 나의 인생에 연관이 있는지는 책을 읽고나면 저절로 얻는 부분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읽고나서 즐거웠다면...
여성들은 솔직하다.
남성들처럼 권위에 명예에 빠져있지 않다.
허영심은 오히려 권위나 명예에 빠진 자존심보다 솔직하다고 생각한다.
두꺼운 책을 꺼내놓고 한숨만 쉬다가도 누군가 들어오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할 말로 자신의 지식덩어리를 아무 연관없이 나열해놓고는 자랑스러운 듯이 웃고 있는 것 보다는.
솔직하게 사랑을 노래하고, 삶을 이야기하는 문학작품 속에서 울고 웃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필수적으로 읽어야할 전공서에 대해서는 예외로 한다)
책을 읽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주변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통해 얻게 된 고독의 순간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고독하게 책을 읽는 사람을 빨아들일 정도로 강한 궤적을 남기면서 사람은 독자의 주위를 지나가고, 책으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성벽은 삶의 흡인력을 막아낼 정도로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문 188쪽)
책을 읽는 사람이 만드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난 그 벽을 참... 잘 만드는 편이다. 가끔 그 벽을 이용할 때도 있다.
시끄러운 쉬는 시간 책한권을 꺼내놓고 읽고 있으면 아무도 말을 걸지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나에게 오지마시오"라고 적어놓지도 않았는데!
책읽는 동안에는 실제로 아주 작은 공간..이 내 것이 된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다. 노크는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나가는 건 되지만,
누군가 들어올 수는 없다.
실제로 그 고독의 순간이 좋다.
아마도 책을 읽는 여자들의 모습을 담은 화폭들 속 주인공들은
그 고독의 순간을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주인공들은 곧 삶으로 돌아간다.
그림 속에서 책과 주인공 사이에 항상 끼어있던 삶.
어느순간 문득 "내가 어디있는가"를 알아차리게 만드는 삶.
그리고 그 순간 책을 덮는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지 않다.
그녀들은 그저 자신의 시간을 즐기는 방법을 알고있을 뿐이다.
그녀들이 책 속의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건, 독서행위-중일뿐.
그녀들은 곧 끼어드는 삶 속에 부딪혀야하고 바둥거려야 한다.
여자들이 책을 읽고 쓰게되는 오늘날까지
독서의 의미는 변화되어 왔고, 독자도 변화되었다.
글을 읽는 인구가 늘어나고, 그에 따른 생각도, 욕구도 늘어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조선후기 세종대왕님께서 한글을 창제하시고, 농민들이 모내기법 등으로 살만해지면서
서민문화가 급속하게 발달하게 된 것 처럼 말이다.
여자들이 소설을 썼고(사씨남정기) 서민들이 소설을 읽고 만들었다.(홍길동전)
그들의 생각을 드러내고 나누는 매개체가 된다.
책이란, 독서란,
난 다독을 장려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다들 그렇게 장려한다.
그 옛날 아직까지 사회적약자들의 귀족의 문화였던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서 자존심이 긁혔다는 생각아래 괜히 곱게보지 않았던 시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의 즐거움을 맛본 수많은 여성독자들에 의하여,
그리고 서민독자들에 의하여,
그리고 독자들에 의하여
바뀐 것이테니까 말이다.
뭐. 아무튼 많이 읽자!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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