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 10점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양철북


제목이 따뜻했다. 무슨 이유일까? 왜 선생님이 좋은 걸까?

한 친구는 내게 말했다. "어째서 교사와 학생은 적대적일 수 밖에 없는 걸까?"

서로 싸우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언제나 으르릉 대는 교사와 학생이라는 관계.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선생님이 좋다고 한 걸까?
..그리고 우리반 학생들을 날 좋아하고 있을까?


일본의 한 초등학교. 그곳은 쓰레기 소각장 옆에 있기때문에, 생활격차가 나는 아이들이 모여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그 원인은 항상 쓰레기소각장의 아이들이다.

1학년 교실.
고다미 선생님은 처음으로 발령을 받았고,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눈앞의 현실은 녹녹치않았다.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말로 선생님을 놀래켰다. 이론속에서 언제나 깔깔깔 웃으며 선생님과 함께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은 현실속에서는 없다.
물론 "공부"의 정의를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이 문장은 틀린 문장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데쓰조는 고다미 선생님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데쓰조같은 아이는 없지만 충분히 고다미 선생님에게 몰입할 수 있었던건, 나도 3월달에 받은 충격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인 듯 하다. 매일매일이 새롭다. 언제나 아이들은 무언가를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라도 조용히 집에 돌아가고 나면 심신이 떨려오며 불안함에 잠을 못 이루기라도 하는 것이냔말이다!!!!!!!

문제아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했던 쓰레기소각장의 아이들.

그러나 고다미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좀 더 이해하려고 애를 썼고, 먼저 다가가려고 애를 썼다.
아다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아이들이 원래 보물을 더 많이 가지고 있지요"

보물..이라.
평소 상식적으로 생각했던 "공부를 잘하는 능력"은 없다. "친구를 잘 사귀는 능력"도 없다. "미술이나 음악, 체육분야의 능력"도 없다. 할 줄 아는 거라곤 매일 사고치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에게 "보물이 숨겨져있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아다치선생님은 "학생들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분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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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8 23:44 2007/11/1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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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Simple/ONO Natsume

2007/08/23 12:57
Not Simple
오노 나츠메 지음/애니북스

 "어때요. 다시 만나기로 약속 안 할래요?"

"..."

"1년후.. 아냐, 3년 후에... 그땐 뭔가 크게 변했을지도 모르니까"

"분명히 변해있을 거예요."



철저하게 비극적인 한 남자의 생이 그려진 이야기.
오노 나츠메는 그 비극적인 남자의 인생을 정말 심플하게 그리고서 전혀 심플하지 않은 감동을 준다.
오노 나츠메는 그런 작가이다.


*작가소개(출처 : 본문)
창작계 동인지 활동을 거쳐 2003년 웹진 <COMIC SEED!>에서 『LA QUINTA CAMERA ~다섯번째 방~』으로 정식 데뷔했다.
2005년부터 <망가 에로틱스 F>에 연재한 『리스토란테 파라디조』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계약한 출판사의 부도로 일본 3대 출판사 중 하나인 쇼가쿠칸에서 『not simple』과 『LA QUINTA CAMERA ~다섯번째 방~』의 개정판이 재판되었으며,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신작 『납치사 고요』로 2006년 한 해 일본 만화계 최고의 주목을 받았다.
유럽 배경에 중년 남녀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많으며 데뷔 전에는 이탈리아에서 어학연수를 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필명 basso로도 유명하다.

 
나는 오노나츠메씨를 basso로 먼저 알게 되었다. basso로 유명한 작품 중에 하나는 곰과 인텔리. 장르를 구분하자면 "그남자들의 사랑이야기"인데다 짧은 단편이 5개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그 곰과인텔리에 확 반한 건 화풍.

턱이 뾰족하고 적어도 8~12등신은 되며 눈은 반짝거리고( ..a) 입술은 도톰한 모델같은 늘씬한 애들을 보고있는 것도 이젠 지겨워진건가. ㅎ 오노 나츠메의 그 단순하면서도 미묘한 움직임에 반해버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not simple에 나오는 캐릭터들이다. 저 퀭한 눈들을 보시라!!  난 저 눈에 반했..
암튼.. 주인공은 IAN이고 그를 계속 지켜보고 소설로 만든 사람이 Jim 그리고 Kaylee는 이안의 누나이다. 그를 둘러싸고 중요한 인물이 SHE.. 그녀이고 그 외에 비정한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안의 주변에서 이안의 인생을 만든 사람들.

이안은..불쌍하다.
그래.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 한마디면 설명이 된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원하던 사람과는 만나지 못했다. 감정을 설명하는 것이 서툴고,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포레스트 검프 마냥 뛰어다녔지만 그에겐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젊은 여자아이의 장난스런 관심에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버리고 만 불쌍한 인생.
3년전에 만난 그녀를 다시 보기 직전에 말이다. 그것..뿐이었는데.

걷고 또 걸으며 만난 수많은 친절한 사람보다
좀더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온정을 필요로 했다던 이안의 축처진 어깨와 함께 들려온 말은
가슴을 죄어왔다.

본문 7쪽
가족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저 가까이에 있는 사람?
가까이에 있으면서 온정을 주는 사람?
날 낳으시고 보살펴준 사람?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는 사람?

사람들에게 가족이란 지금까지 그저 "충분"조건으로 만족한다.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가족을 인정하고 사랑한다.

그러나 나에겐 "필요"조건이 되야한다.
있다는 존재만으로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아플때 연락할 수 있고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으며 타인이라고 불리지 않을만한, 끈끈한 유대감.
비록 표현하지는 않지만,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고, 나름의 응석을 부릴 수 있는 관계.
엄마나 동생에겐 다른 사람에게는 잘 하지않는 투정이나 어리광을 부린다.
미안하면서도 그럴 수 있는 관계. 그들이 나에게 주는 따스한 온정을 느끼기 때문에 난 그들을 가족이라 부른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


항상 이런 이분법적 사고는 화를 부른다.
가족이란건 저렇게 나눠지거나 인정받거나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않을까..

이안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다. 그러나 버림받았다.
그러나 이안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좀 더 따스하게 대해주길 바랄 뿐.
그의 낙천적이고 세상물쩡모르는 순박한 심성이 그렇게 만들었을지 몰라도.
그는 있는 그대로의 가족을 인정한다.
그리고 "누나"라는 진짜 가족을 애타게 기다린다. 끊임없이.

그리고 살아가면서 만난 친절한 사람들 중 하나인 짐과 그녀는 가족이 될 수 없었다.
아무리 따스하게 대해주어도. 이안에게 그와 그녀는 타인일 뿐. 친구이고 그녀일 뿐이다.

이안이 고지식했던 것은 아닐까.
그나 그녀와 새로운 가족을 만들면 되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면서도
엄마 아빠의 관심을 필요로하는 어린아이에서 몸뚱이만 커져버린 이안에게 필요한 건
그야말로 엄마아빠누나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에구구 그저 가슴만 미어진다.

가족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있어야 하는 존재인거다. 없으면 안되는 거다. 그리고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피"라는 것으로 연결은 해주어야 한다. 똑같은 피가 흐른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엔 전혀 알 수 없지만, 단지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안정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런 핏줄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공허해지기 마련이다. 사람이란.
그리고 핏줄만 같다고 되는 게 아니다. 온정이 필요하다. 피의 온도를 높여야 한다는 소리다. 그 온도에 사람들은 성장한다. 그 따스한 온정이 충분하게 아이의 온몸을 달달하게 감쌀때 그 아이는 사회라는 커다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결국 가족끼리 사랑하며 살자는 거다. 그 곳에서 찾지 못한 것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하지 말라는 거다.

(나는 물론 혼자살고 있고, 혼자사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버렸지만, 매일매일 전화오는 어머니의 음성은 귀찮다기 보다 오히려 내가 안심하는 수단 중 하나가 되었다. 아무 생각없이, 이유없이 불평불만을 해댈 수 있다. 물론 그건 어머니에겐 죄송스런 일이긴 하지만, 마지막까지 날 믿어줄 사람은 .. 그래도 어머니랑 동생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언제나 타산지석.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안의 인생은 역시나 픽션이지만,
픽션이란 언제나 논픽션을 바탕으로 제작되는 법.

이런 소설에서 얻은 자그마한 감동으로 내일을 변화시킬 순 없지만,
소중한 것이 반짝거린다.

전혀 심플하지 않은 이야기.
Not Simple.
추천. 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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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3 12:57 2007/08/2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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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아.한참만의 포스팅. 하하.

오랜만에 읽은 책 한권은 독서의 역사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초점은 바로 "여성"이다.

독서는 현재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처럼 모든사람에게 열린 지식과 감동의 바다를 헤엄치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독서란.. 남성들의 독서와는 다르게 변해온다. 그리고 독서의 본질 자체도 변해간다.

책을 만드는 일-자체가 굉장히 힘든 먼 옛날. 당연히 책이 부와 명예의 상징이 되었을 때 부터,
대중화된 책이 지식을 전수하는 역할이 아니라 상품가치가 매겨지게 된 오늘날까지.
여성들에게 초점을 두고, 독서를 하는 여성들의 화폭과 함께 독서의 역사를 따져보다보면
"독서의 목적"이 변하고 있음을 알게되었으며,
책-독자-작가와의 관계가 지금처럼 대등하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히려 가장은 다독을 일종의 정신병으로 간주했으며, 자녀들이 그 같은 '병'에 걸리지 않도록 상당한 신경을 써다.  (중략) 문학의 유용성과 해악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이처럼 격렬한 논쟁은 오늘날 폭력적인 컴퓨터 게임을 두러싸고 벌어지는 논쟁과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논쟁은 독서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양자택일적 결정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런 요구 속에서 계몽적 요구와 감상주의적 독자의 수용태도가 서로 심하게 대립했다. (본문 118~119쪽)

독서의 본질은 무엇인가. 독서를 함으로써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바는 무엇인가.

....

사실 그런 건 개인의 자유라고 본다. 무조건 계몽을 위해서 또는 감상적으로 읽기 위해 책을 읽진 않는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철저히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읽어주는 것과는 다르다)
나의 경우를 생각해보자면, 난 "즐거움"이다. 읽고 즐거워야한다. 나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책이란 쉽게 읽혀지는 판타지소설외에도 읽고나서 계몽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자극이 느껴진다면 그것도 즐거운 일이다. 또한 내가 몰랐던 지식의 바다속에서 고등어 한마리 건져올린다면 그것도 즐거운 일이다.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구체적으로 예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며, 개인마다 느끼는 즐거움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모두 각각 다를 것이다.
책이란 직접적인 생산을 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시간을 소비하는 일이지 않던가.
책에 빠져 설거지도 청소도 잊고 있는 하녀의 그림속에서 나타나듯이 세상은 생산적이지 않은 일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관대하지 못하다. 물론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_-; 책에 빠져 청소를 하지 않는 하녀를 보는 사람들은 하녀가 가지고 있는 책에 대해 그저 "시간을 빼앗는 오락거리"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그 책에 푹 빠져 정신없이 읽고 있는 하녀의 입장에서 그 책은 "소중한 인생을 즐기는 훌륭한 동반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그 정도가 어디까지 용납될 수 있을지는 ... 내가 왈가불가할 수는 없어보인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한다. 단순한 오락거리의 책을 봐야만 하는가. 그것을 올바른 독서행위라고 할 수 있는가?


독자가 책에 쓰인 것을 그대로 믿고, 책과 현실을 똑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부터 책은 더 이상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영혼의 양식이 아니라 오히려 삶에 남은 마지막 광채조차 빼앗아가 삶을 초라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책은 삶이라는 험난한 항로에서 길을 안내하는 나침반의 기능을 수행하는 대신에 오히려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 속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간다. 넘쳐나는 책 사태 속에서 올바른 책을 선택하는 것은 좋은책을 읽기 위해서 거쳐야만 하는 필 수 과정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책을 선택하는 것은 자아를 찾아가는 어려운 탐사 여행과 같은 것이 되었다.(본문 182~183쪽)


올바른 독서행위란 양서를 찾아읽고 그 내용을 꼼꼼하게 이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즐거움"을 첫번째 목표로 삼고있는 나는 사실 이해가 조금 되지 않더라도 책을 덮는다. 지금 느낀 즐거움이 다 가신 뒤에 다른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가벼워보이는 독서행위는 결국 대중 속으로 들어왔고 그 가치는 예전에 비하여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독서가 "교양"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비율은 예전에 비하면 많이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넘쳐나는 책 사태 속에서 올바른 책을 선택하는 것은 다독-후에 안목을 기르는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내가 관심있는 분야가 어떤것이며,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어떤 문체를 가진 작가를, 어떤 내용의 책이 나의 인생에 연관이 있는지는 책을 읽고나면 저절로 얻는 부분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읽고나서 즐거웠다면...

여성들은 솔직하다.
남성들처럼 권위에 명예에 빠져있지 않다.
허영심은 오히려 권위나 명예에 빠진 자존심보다 솔직하다고 생각한다.
두꺼운 책을 꺼내놓고 한숨만 쉬다가도 누군가 들어오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할 말로 자신의 지식덩어리를 아무 연관없이 나열해놓고는 자랑스러운 듯이 웃고 있는 것 보다는.
솔직하게 사랑을 노래하고, 삶을 이야기하는 문학작품 속에서 울고 웃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필수적으로 읽어야할 전공서에 대해서는 예외로 한다)




책을 읽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주변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통해 얻게 된 고독의 순간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고독하게 책을 읽는 사람을 빨아들일 정도로 강한 궤적을 남기면서 사람은 독자의 주위를 지나가고, 책으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성벽은 삶의 흡인력을 막아낼 정도로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문 188쪽)


책을 읽는 사람이 만드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난 그 벽을 참... 잘 만드는 편이다. 가끔 그 벽을 이용할 때도 있다.
시끄러운 쉬는 시간 책한권을 꺼내놓고 읽고 있으면 아무도 말을 걸지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나에게 오지마시오"라고 적어놓지도 않았는데!
책읽는 동안에는 실제로 아주 작은 공간..이 내 것이 된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다. 노크는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나가는 건 되지만,
누군가 들어올 수는 없다.
실제로 그 고독의 순간이 좋다.


아마도 책을 읽는 여자들의 모습을 담은 화폭들 속 주인공들은
그 고독의 순간을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주인공들은 곧 삶으로 돌아간다.
그림 속에서 책과 주인공 사이에 항상 끼어있던 삶.
어느순간 문득 "내가 어디있는가"를 알아차리게 만드는 삶.
그리고 그 순간 책을 덮는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지 않다.
그녀들은 그저 자신의 시간을 즐기는 방법을 알고있을 뿐이다.
그녀들이 책 속의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건, 독서행위-중일뿐.
그녀들은 곧 끼어드는 삶 속에 부딪혀야하고 바둥거려야 한다.

여자들이 책을 읽고 쓰게되는 오늘날까지
독서의 의미는 변화되어 왔고, 독자도 변화되었다.
글을 읽는 인구가 늘어나고, 그에 따른 생각도, 욕구도 늘어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조선후기 세종대왕님께서 한글을 창제하시고, 농민들이 모내기법 등으로 살만해지면서
서민문화가 급속하게 발달하게 된 것 처럼 말이다.
여자들이 소설을 썼고(사씨남정기) 서민들이 소설을 읽고 만들었다.(홍길동전)
그들의 생각을 드러내고 나누는 매개체가 된다.

책이란, 독서란,

난 다독을 장려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다들 그렇게 장려한다.
그 옛날 아직까지 사회적약자들의 귀족의 문화였던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서 자존심이 긁혔다는 생각아래 괜히 곱게보지 않았던 시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의 즐거움을 맛본 수많은 여성독자들에 의하여,
그리고 서민독자들에 의하여,
그리고 독자들에 의하여
바뀐 것이테니까 말이다.
뭐. 아무튼 많이 읽자!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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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4 03:11 2007/07/24 03:11
  1. 보람
    2007/07/25 20:15
    읽자 읽어!!
    암튼 난 읽는 게 너무 좋단말야~
    뭐 좀 취미쪽에 치우쳐서 읽기는 하지만..그래도 책, 좋잖아? 후후후~~
  2. Seraph★
    2007/08/24 14:08
    오오! 저 책 재미있어 보이네요~ 그런데 책을 많이 읽다 보면 왠지 활자중독증 걸리지 않아요?
    화장실에 가서도 문앞에 붙어있는 뭔가 구절을 중얼중얼 읽게 된다던지... <<저만 그런가요.
    차타면 간판을 읽게 된다던지<< 요새는 이것도 소리내서 읽죠, 미치겠어요; 차타면 심심한가;;;
    근데 다독이 '병'이라니=ㅁ= 정신건강에 좋은 책을 많이 많이 읽읍시다.....
    (막 이러면서, 추천하는 책은, 스미레 16세........ㅋㅋㅋ=ㅁ=;)
    • 삽살
      2007/08/25 08:27
      ㅎㅎ활자중독 2급까진 가신 듯!
      네네 자꾸 읽고있으면 관성이라도 생긴 듯 계속 읽게 되더라구요.
      근데 안 읽고 읽으면 또 계속 안읽게된다죠 ㅠㅠ 엉엉

      아악 읽으란말이다! 스미레16세 접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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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미야 하루히의 분개
타니가와 나가루 지음, 이덕주 옮김, 이토 노이지 그림/대원씨아이(단행본)
움직일 때마다 공중에 민폐라 부를 만한 것들을 흩뿌리고 다니는 녀석은 내가 아는 한 한 명밖에 없다. 민폐란ㅡ.
나는 허공에 한숨을 토해낸 뒤 말했다.

"언제나 하루히가 끼치고 있지."

8권이 나왔다. 얼씨구~지화자~하며 냉큼 질렀다.
그리고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한숨, 무료, 소실, 폭주, 동요, 음모로 이어지는 분개편은 (작가는 아무생각없이 되는대로 제목을 짓는다고 했지만, 나름...내용과 연관성이 있다?) 고이즈미의 자작극 한편과 인간으로 치면 바이러스와 같은 정보생명체의 활동으로 인한 요상한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민폐를 끼치는 하루히와, 민폐를 짊어진 쿈과, 민폐를 만드는 고이즈미와 민폐를 해결하는 유키와 민폐...를 당하는 아사히나 선배의 이야기는 아무튼 또 시작됐다.

폭신폭신한 상급생인 아사히나 선배는 당혹스런 표정으로 종이를 보며 연필을 어린애처럼 쥐고 깨작깨작 선을 그었다가 잠시 생각한 뒤 지우개로 벅벅 지운 뒤 다시,
"으음ㅡ."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작업을 계속하고 계시다.

내용 소개야 읽어보면 알지 않는가 ㅋ
특이할만한 점이라 하면 분개에서는 SOS단의 문예부 활동모습이 나오고, 아사히나선배의 동화와 쿈의 연애소설, 유키의 환상호러 작품이 나오는데, 고이즈미 설명대로 "글이라는 건 은연중에 항상 작가의 내면이 투영"되므로 캐릭터들의 알고있었지만, 글로 표현되는 내면이 재밌다-랄까?
특히 쿈의 경우에는 스즈미야하루히 소설 전반에 걸쳐 내면을 드러내고 있기때문에, 오히려 "문예부 작품"이라고 표면위에 내놓은 작품속에서 나타난 "맛 간 단장"같은 표현은 푸하하하하하하하
미쿠루는 뭔가 짜집기 한 듯하면서도 귀여운 동화에 푸하하하하하하하하
게다가 폭신폭신한, 깨작깨작, 벅벅이라는 의태어가 정말 아사히나 선배의 작업모습을 현실감있게 표현해주는 것 같아 풉-거렸다.
유키는 유키다운 알 수 없는 일기형식의 환상 문학을..... 두둥!
고이즈미의 미스터리는 산장사건을 그대로 적는다고 했기 때문인지 따로 나오지는 않았고, 하루히의 논문같은 글은 아사히나 선배가 미래에서 받는 시간에 대한 기초 이론이었다는 나비효과가 등장하며 문예부 사건 종결!

1년 가까이 하루히를 봐오면 이 정도는 알 수 있다. 그 녀석이 좋아하는 건 유령이 아니라 다 같이 유령을 찾으러 다니는 행위인 것이다.

곧 SOS단은 진급을 하게 된다. 어떻게 달라질까? 시간상으로 1학년에서 2학년이란 얼마 되지 않는다. 봄방학이 끝나면 사실상 2학년이라 불린다. 그러나 2학년이 된 SOS단원(아..미쿠루는 3학년이군영)들에게는 어떤 바람이 불어올 것인가. 1학년 1년간 끊임없이 불어닥친 사건폭풍을 되돌아보며 쿈은 이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를 완전히 파악한 것 같다. 고이즈미나 미쿠루의 역할도 완전히 고정된 듯 한데, 신경쓰이는 건 유키다. 문예지에 넣은 글도 그러했지만, 자신의 위치에 대해 고민하는 듯 했던 그녀의 내면! 아아! 9권이 되면 확실히 씻겨내려갈 수 있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우리의 히로인! 스즈미야 하루히는 과연 무엇은 원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그녀는 어떤 세계를 원하고 있는가? 그녀의 에너지는 쓰면 없어지는 고갈 자원이 아니란 말인가!!!!
사실 매번 느끼지만, 우승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드는 그녀의 모습은 보기가 좋다.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일까. 상식적인 선을 넘어 밀어부치긴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힘을 모르고 밀어부치기 때문인가) 1등이라던가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조금만 잘못될까 싶으면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폭발적인 파워로 일을 추진하는 단장의 모습은 미래. 그 자체다.
희망차다.
즐겁게 산다는 건 모두가 원하지만, 모두들 핑계를 대며 수줍어 하기만 할 뿐, 제대로 놀지 못하잖아.
하지만 하루히는 즐겁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이번에도 그녀는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나는 그런 그녀가 좋다.
 


작가 후기 중-
이 책들을 읽은 기억이란 놈이 현재의 제 뇌에 축적되어 지금의 제 사고 형태를 형성하고 있는 거구나 하는 겁니다. 물론 모든 책의 내용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당시의 제 머리에 새겨진 독서의 기억은 증발하지 않고 깊이 가라앉아 지금이라도 저 깊은 곳에서 흔들거리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더더욱 여실히 느낀 건데, 중요한 포인트는 역시 타이밍인거죠. 정말 그때 그 타이밍에 읽었기 때문에 군말않고 감명을 받거나 영향을 받거나 했떤 거지, 지금 처음 읽었다면 아마 감명도 영향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향했을 겁니다.
말하자면 과거에 접한 방대한 문장들은 지금 제가 만들어내고 있는 문장ㅡ이 후기도 포함해서ㅡ의 멀지만 현존하고 있는 선조와 같은 겁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빠졌다면 이 후기가 존재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작가가 10년전의 박스를 발견하고 그 안에 모셔져있는 책들을 보고 난 후에 적은 후기인데....
사람과의 만남이든 책과의 만남이든, 역시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이다!
마침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회사에서는 70%만 일해도 돼"라는 문장을 읽은 친구가 엄청 감명받은 것 처럼 말이다.
사람마다 감동의 포인트가 다르고, 책에 대한 이해가 다른 까닭은 사람마다 경험치라던가, 배경지식,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고, 그래서 같은 책을 읽어도 인생의 소중한 책으로 남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필독서라던가, 꼭 읽어야 할 책을 읽는 것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이다. 난.
사람처럼 책도- 인연-이라고나 할까. 도서관에서 왠지 끌리는 책을 발견했을 때 읽으면 왠지 감정이입이 많이 된다거나, 감명을 받는 부분이 많다-라고 느끼는 건 단순한 착각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읽었다는 기억만으로도 지금 내가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생각을 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 공감되는 것 같다. 어떤 식의 문장을 읽고, 어떤 식으로 해석했는가?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가? 가 결국 내가 읽은 것들에서 나오는 것 같다는 건.. 1인칭 시점의 글을 좋아하고, 글을 쓰게되면 1인칭으로 쓰게 된다던가 하는 지금의 내 버릇을 봐도 확실한 것 같다. ㅎㅎ

그리고 방대한 문장을 독서한 기억 속에서 튀어나오는 작가의 풍부한 수사력 -_ㅁ;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가 재밌다고 느껴지는 이유중에 하나가 1인칭 시점의 쿈이 상황이나 인물을 비유할 때 쓰는 그 다양한 소재과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단순한 묘사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을 연관성 많은 비유로 폭넓게 그려내는 능력이라고 보는데, 그 모든게 작가의 독서기억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나 싶다 ㅋ

특별하지 않은 학원생활이 배경이지만(아...충분히 사건사건들은 특별한 일들이지만) 그리면서도, 항상 신선하다. 우주인과 미래인, 초능력자와 럭비공 같은 신, 그리고 인간.

아무튼 재밌다. 에헷. 9권도 빨리 나와랏! ㅋ

그나저나 스즈미야 하루히의 코스프레 완전판
-> http://blog.naver.com/dksdbsrud84/7001560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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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4 11:15 2007/03/2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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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문학과지성사
오랜만에 한국작가의 한국 소설을 손에 잡는다.
본래 책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기도 하고, 호흡이 긴 문장은 숨이 차서 읽지를 못하며 기억력은 지지리도 나빠서 캐릭터 많은 판타지도 팔 수 없는 사정상 호흡이 짧고 간단하면서도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되, 감정을 극하게 자극하지 않는 소설을 찾다보니 일본소설을 많이 읽었다.
게다가 서스펜스, 추리, 호러, 퇴마 이런 장르는 또 사죽을 못 쓴다. 감동도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것 말고 조금은 절제된 편의 얕은 파도가 찰싹찰싹 쳐주는 정도면 좋다.
 
그런데 그렇게 편식을 하다보면 한국작가의 소설은 눈 밖으로 넘어서더라.
게다가 난 장대한 대하소설, 장편소설에는 도전할 만한 내공이 아직 안 쌓여있는 걸.
그러나 다이어리를 구입하고자 하는 마음에, 일러스트가 권신아라는 것에, 제목에서 느껴지는 우리네의 가벼운 일상같은 이야기라는 확신에, 베스트셀러코너에서 본 것 같아서, 질렀다.

주인공  "오은수"

작가는 이 이야기가 정이현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은수의 것으로 남겨지길 바랬다.

내용은 간단하다.
오은수. 서울에 사는 30대 초반의 미혼 여성.
스노우펠리스 206호라는 작은 원룸에서 살고있으며 회사는 다니다가 관뒀고 연애는 끊임없이 하지만 그녀는 아직 미혼.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성격. 꿈은 .. 있던가없던가. 하루하루 일벌레처럼 바쁘게 살다가도 순간순간 밀려오는 회의감을 느낌. 관계된 가족과 친척, 직장동료들 사이에서 너무 깊숙히 파고들지도 않고 튕겨나가지도 않는 위치를 고르며 살고 있음. 그런 달콤한 도시 속 여성에 대한 하루하루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인 재인과 유희는 그녀가 갖고 있지 않은 면을 가지고 있어 달콤한 도시 속 여성의 또다른 면들을 보여준다.


솔직히 나의 이야기는 아니다.
난 20대 중초반 미혼여성이거든. 헤헤헤

하지만 난 20대 중초반 미혼여성임과 동시에 졸업을 앞둔 학생이고, 예비 직장인이다.
음. 그리고 내 안에서 직장인이란 어른을 말하기도 한다.
난 이제 어른이 된다. 어린아이, 청소년, 청년을 거쳐서 말이다.

어린아이에서 청소년이 될 때 생각했다. "청소년은 노트정리를 스스로 할 수 있어야해!"
칠판에서 교사가 쉴새없이 떠드는 말 속에서 중요한 것을 찾아내 줄 공책에 스스로 정리하는 모습! 그것이 내가 그리던 청소년이었다. (지금생각하면 난 정말 순수한 학구열에.. 퍽!)
청소년에서 청년이 될 때 생각했다. "하고 싶은 걸 하자!"
그래서 주구장창 놀았다. 학점도 신경쓰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하며 놀았다. 그런데 그 하고싶은 것이 지나고 나면 계속해서 생겼다. 그래서 지금은 후회중이다.
이제 청년에서 어른이 될 때다.
그런데 모르겠다. 어른이 되면 "이러이러하게 되자!"라는 것이 없다.
"이러이러하게 되자~"라고 생각해도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벌써 알고 있기 때문일까.
어떤 꿈을 그린다는 것은 젊음의 특권인가? 나이라는 건 지금의 내 나이로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파워를 가지고 있다는 건가?

오은수를 좋아했던 연하남 윤태오는 딱 내나이다. 현재를 즐긴다. 그러나 세상은 녹녹치않다.
그는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바빠졌고 오은수는 추억의 그녀가 될 것이다.

졸업하는 시즌, 약 두달간의 방학. 올해 어딘가로 발령이 나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아가는 직장여성으로서 어엿한 신분을 얻게되면 지금까지와는 분명 다른 인생이 펼쳐질꺼라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막연한 미래에 대해 그에 대한 대비를 하나도 하지 않는다. 면허를 따도 충분했고, 살을 빼도 충분한 시기였으나, 매일매일 마치 방학인 것 처럼 애니메이션 보고, 만화보고 순수한 열정으로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외치기엔 이젠 한심해보이기까지 하는 생활생활. 그냥 게으르다-라고 하면 끝일지몰라도, 사실 어른이 되기 싫다는 연약한 마음도 작용했다고 본다. 계획하고 어딘가에 매여 살아가게 될 그 곳을 벌써부터 경험하기 싫다. 어리광이다.

본디 계획적인 인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약한 인간은 아니다. 이제 바뀔 때도 되었다.
어른이 되어야 할 시점에서 어른이 되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년으로 계속 남아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제일 꼴사납다. 그러나 시시한 어른은 되지 말자. 달콤한 우리 도시의 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살아보자.

어른다운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기 인생을 스스로 그릴 수 있는 책임감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난 그 책임감을 정의내리기 위해 살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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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4 13:19 2007/02/0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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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히가시노게이고

2007/02/01 14:04
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자넨 잘못한 게 없어.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살려고 했을 뿐이지. 하지만 실제로 뭐가 옳은지는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걸세. 방금 자네가 얘기했듯이 말이야...."


히가시노 게이고.
용의자 X의 헌신에 이어 그 작가의 소설이라길래 무작정 질러버렸다.
"인간"이 중심이 되어있는 추리소설이 맘에 들었었거든.
"사건"과 "증거"가 중심이 아니라 충동적으로 저질러버린 살해를 중심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혹은 그 사건의 범인을 쫓아가는 형사의 심리를 파악하며 읽어나가는 것이 재밌었거든.

역시나 편지도 "사건"이 등장하지만, 역시 "인간"이 우선이다.

일본 열도를 눈물바다로 만든 감동의 휴먼 드라마 <편지>
가해자의 시선으로 그린 눈물겹고, 피보다 진한 형제이야기.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가해자의 가족은 언제나 사각지대에 가려져있다.
범죄자유전인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가족이 한 인간을 살인자로 길러낸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범죄자는 대부분 한 가정의 아들딸이고, 한가정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한 가정의 형 또는 누나, 언니, 오빠이기도 한 것이다.
피해자의 슬픔에 대해 논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살인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두고 우리는 꽤나 이기적인 시선을 보낸 것은 아니냐는 이야기다.

형 츠요시, 동생 나오키
형제가 살아온 과정이 책의 앞부분에 나온다. 아버지는 동생이 세살때 세상을 떠났다. 일에 치여 살다가 피로가 겹친채 운전을 하다가 졸음운전으로 세상을 뜨신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도 결국 과로한 피로로 쓰러지셨다. 형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짐을 등에 얹고 동생을 위해 살아가기로 한다.

동생의 학비를 위해 절박해진 형은 해서는 안되는 일에 손을 댄다.
사람마다 "절박함"을 느낄 상황이란 다 다르지만, 츠요시에게 있어 동생의 학비는 일생의 숙원과 같은 것이었다.
동생을 학비를 위해 주인에게 말하지 않고 빌리는 일을 하기로 했다. 마음이 착했던 형은 돈뭉치를 가져오는 것 이 외에 피해를 주지 않기위해 창문을 깨는 것도 미안해했다. 뭐. 그래봤자 도둑질은 도둑질이긴 하지만.

초보강도에게 없을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란 얼떨결에 도망을 치거나, 소리지르려는 사람에게 달려들어 제지하거나, 그러다 살인을 저지르는 일. 곧 잡혀버린 형은 교도소에서 생활하게 되고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다-는 건 변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그 형의 입장이 되어보자.
아니 그 형이 아니라 자신의 학비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형을 가진 동생의 입장이 되어보자.
이러한 상황에서 저질러져버린 살인사건이 프롤로그로 나오면, 본 이야기는 시작된다. 교도소에서 오히려 맘편하게 편지나 보내고 있는 형과 그런 형을 갖게되버린 동생이 겪어야 할 차별과 고통.

동생의 입장에서 몰입하다보면 그가 겪는 일들에 대해 같이 분노를 터뜨린다.
이 세상은 역시 잘못되어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간에 사장님으로 대변되는 작가는 말한다.
"자네 형을 말하자면, 자살을 한 셈이야. 사회적인 죽음을 선택한 거지. 하지만 그 일로 인해 남겨진 자네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할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았어. 본인만 벌을 받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닐세. 자네가 지금 겪고 있는 고난 까지도 자네 형이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이란 말일세."

"자신이 죄를 지으면 가족도 고통을 받게 된다는 걸 모든 범죄자들이 깨달아야 한다는 이야기지."

아.
어떤 사건이 있으면 그 사건에는 관련된 사람들이 한 부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건파일 중 하나로 보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그 사건을 일으킨 사람도 있고, 그 사건의 피해를 당한 사람도 있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도 있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가족 옆에 사는 사람도 있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이 일하는 곳 직장 동료도 있다.

"세상엔 관계라는 것이 있다"


가해자의 형벌이 적은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는가.
그러나 응당 받아야 할 죄값은 시간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관계라는 것은 사람을 옭아매면서도 사람을 살아가게 만든다.
엉키는 것도 이 안에서고, 풀어내는 것도 이 안이다.

나오키와 츠요시.
절대 행복하지 않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다.
그들은 얽혀버린 실을 한가닥씩 풀어내어야 할 것이다.
많이 힘들겠지만 말이다. 넘어야 할 산이 높다.


소설을 읽고 눈물을 짜내어보기는 굉장히 오랜만이다.
후반부로 가자 두 눈에 맺혀 그렁그렁했던 방울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려 간질거렸다.



"나는 형을 용서했지만 사회는 그런 나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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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1 14:04 2007/02/01 14:04
  1. 쿠루
    2007/02/01 18:09
    보고싶은데..왠지 울것만 같아 두렵네..
  2. 삽살
    2007/02/03 20:55
    음.. 아마 울거야 응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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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현대문학

사람이 풀기 힘든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것을 푸는 것 중 어느 쪽이 어려운지. 단, 해답은 반드시 있어. 어때, 재미있지 않나?"
171쪽


추리소설은 분명 추리소설인데...
영 허술하다. 뭔가. 꺼림찍하다. 분명 꼬투리잡을 곳은 한군데도 없는데, 어째서 이렇게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걸까...


현실에 발이 묶인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와 그의 친구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는 이 소설에서 사건의 답을 만들고, 해답을 찾는 사람이다. 이 소설은 모든 진실은 이 두 사람만이 안다. 수학과 물리학이라는 전문분야가 말해주듯, 이 소설은 마치 증명을 필요로 하는 문제를 푸는 기분이다. 그러나 수학공식처럼 우아하진 않다. 어딘가 지저분하고 어딘가 허전하다. 수학이란 학문의 꽃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공계의 논문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고 하지 않던가. 한줄의 공식으로도 세계를 바꾸는 그런 학문이지 않던가. 

그런 학문을 다루는 똑똑한 학자들이 사건과 관련된다.
사건은 교살. 용의자도 나와있다. 착한 모녀 야스코와 미사토.
사건이 벌어졌고, 해답은 주어져있는데, 마치 수학공식의 증명이라도 하라는 듯한 건방지면서도 골때린다.


추리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는 범인이 누군인가-에 대해 중점을 두고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난 사실 범인이 누구인가보다 어떤 단서가 어떻게 추리로 연결되는가가 더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한다.
체포소설이 아니라 추리소설이라구. 어쨌든 그래서 난 용의자가 아예 미리나와있는 점이 신선하다 생각했다.
게다가 논리성만 보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의 과정이 인간의 감정과 얽혀
세상일이란 것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것 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음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뭐랄까. 깔끔한 추리로 이 소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그 순수한 욕망에 대해 말해야한다랄까.
그래서 초반에 허전했던 느낌은 아무래도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하는..
조금전까지도 찜찜했던 사건이 다음장을 넘겨 진실을 알고나서는 똑같은 진술내용인데도 불구하고 180도 달라져보이는 신기한 소설. 그리고 그 소설 자체가 사건이고, 그 사건 자체는 바로 인간사다.

어딘가 부족해보이는 세상이라 부족한 세상을 메우기 위해 과학이 등장하고 철저히 분석하고 확인하지만, 직관이라던가, 인간의 감정이라고 하는 비과학적인, 비합리적인 부분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바로 지금.
지금이 소설속에서 그려져있다고 할까나..


용의자 X의 헌신-에서 헌신이란 단어는 단순한 증거와 냉정한 추리만으로는 부족한 추리소설에 필요한 "인간"이라는 점을 채워주고 있는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이 복잡한 은폐공작을 벌이다 보면 그것 때문에 오히려 자기 무덤을 파고 말아. 그러나 천재는 그렇지가 않아. 아주 간단명료해. 그러나 평범한 사람은 절대로 생각해낼 수 없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선택하지 않을 곳에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버려."
300쪽

이시가미는 천재였고, 누구보다 야스코를 사랑했지만, 역시 천재답게 핀트가 어긋나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선택하지 않을 곳이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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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6 15:28 2007/01/1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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