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4.11/16:00 대구시민회관
결국 그렇게 그리고 그리던 헤드윅을 보았습니다.
헤드윅을 알게된 건 2007년도였던 것 같습니다.
2007년도 대장금을 보고 노래가 너무 좋아서 멜론에서 찾아 들으려고 했다가
The Origin of love를 들어버렸던 것이죠.
알고보니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꾸며졌다던 그 노래!!
헤드윅 공식 홈페이지에 나온 이야기를 빌려 이야기하자면
헤드윅 작품 자체의 오리진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헤드윅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은 어쩌면 “사랑의 기원”으로 되돌아가려는 기나긴 하나의 여정으로 함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신화에 따르면 , 오래전 우리는 남자와 여자로 갈라지기 전 하나의 쌍으로 이루어진 완성체였다고 한다. 그땐 세가지의 性이 있었는데, 소년과 소년 (해의 아이들), 소녀와 소녀 (땅의 아이들), 소년과 소녀 (달의 아이들)가 하나로 붙어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완성체로서 당당한 인간이 갖는 능력에 위협을 느낀 제우스 신은 각각의 성을 둘로 갈라버린다. 그리고 사랑이란 바로 완성된 전체를 향한 열망, 즉 잃어버린 반쪽과 다시 결합하여 오래 전 그 행복한 상태로 다시 돌아가려는 열망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조승우와 오만석이라는 뮤지컬 배우의 시원한 노래실력에 빠져 헤드윅 OST를 들으면서 지내다가 알게되었습니다.
헤드윅 영화가 있다는 것을.
원제는 Hedwig and the Angry Inch(15세이상 관람가)
감독 존 카메론 미첼
출연 존 카메론 미첼(헤드윅)
마이클 피트(토미 노시스)
미리엄 쇼어(이츠학)
전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더욱더 헤드윅에 빠져들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뮤지컬이 먼저였겠지만, 영화를 먼저 접한 저는 뮤지컬이 너무나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서울공연이 끝났을 시점 서울에서 정기공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됐고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헤드윅이 전국공연을 자주 다녔습니다. 기대했죠. 대구에 언젠가 오겠구나!
그리고 2009년 헤드윅이 대구 시민 회관에 왔습니다.
이주광과 전혜선씨의 열광적인 오프닝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출처 : 공식 홈페이지 : http://www.hedwig.co.kr/>
1. 모노드라마
한편의 모노드라마 같은 느낌입니다.
열정의 락공연이 계속되지만, 분노의 외침이 제 귓가를 마구 두드립니다만
모노드라마 같습니다.
대극장에서 열리는 뮤지컬 처럼 무대배경이 바뀌거나, 화려하지 않습니다.
무대 배경은 "맨하탄의 3류 호텔 리버사이드 볼룸"
난 어느새 리버사이드 호텔 볼룸에서 헤드윅의 공연을 감상합니다.
그리고 헤드윅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2. 심리치료
헤드윅은 굉장히 불안정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츠학이 마이크를 잡을 때면 불과 같이 화를 내곤 합니다.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보면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는 성정체성의 약화, 그것에 따른 자아존중감 약화 등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기복이 큰 성격도 그러하구요.
하지만 심리치료의 방법중에 모노드라마가 있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과정에서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면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이주광의 연기가 신인임에도 대단하다고 느낀건 그러한 과정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소리, 표정, 행동에서 나타나는 헤드윅의 변화는 살짝 소름끼쳤습니다.
3. 영화 vs 뮤지컬
영화도 참 잘 찍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헤드윅은 역시 뮤지컬인 것 같기도 합니다. 뮤지컬이 먼저 만들어졌기 때문인가요. 껄껄껄
영상미를 보자면 당연히 영화지요. 게다가 상황설명이 영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대사에 집중을 하지 않았던 제 탓도 있던 것 같습니다. 친절한 영화이기에 좀 더 집중하지 못했달까요.
그런데 뮤지컬은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기에 그 노래의 가사들과 헤드윅의 이야기, 그리고 헤드윅을 연기하는 배우의 몸짓과 표정에 집중이 가능했고, 그 노래들의 절실함이나, 애절함이 더욱더 증폭된 것 같습니다.
4.
남들과 다르다는 것의 비애
왜 우리는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하고, 차별하고, 비웃고, 짓밟을까요?
헤드윅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존재입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존재하고 있지요.
그래서 이상한 취급을 받습니다.
그는..아니 그녀는...
엄연히 살아숨쉬고 있으며, 사랑을 갈구하는 완전체인데도 말입니다.
5. 진정한 사랑을 찾아서
매슬로우는 말했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의 욕구가 가장 기본이 된다고.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인간이란 "사랑의 욕구"가 가장 강한 동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면 좋던 입맛도 떨어지는 일도 있으니까요.
사랑에 대한 욕구는 인간임을 나타내는 어떤 기준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란 단지 생물학적 sex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누군가를 그리워 하는 감정. 그것이 사랑 아닐까요?
그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던 헤드윅, 자신의 진정한 짝을 찾기위한 긴 여정 끝에
결국 듣고 맙니다. "그땐 내가 어렸었다...."던 그의 고백을.
6. 나에게서 벗어나 너에게로, 그리고 우리에게로.
헤드윅은 매우 이기적이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기적이지 않다면 살아가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웠을테니까요. 자신을 이용한 사람들,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손벌려 따뜻한 포옹을 해줄만큼 여유롭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점점 이츠학에게 마이크를 넘겨줄만큼 변합니다. 아니 그건 포기였을지도 모르죠.
결국 그를 사랑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는 그래.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니까 이러한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이죠.
마지막에 격렬한 "angly inch"를 부르며 발광을 하고 가발을 벗어던져버립니다. 공주님이 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가발을 말입니다. 그리고 이츠학은 가발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츠학은.. 또다른 헤드윅이었으며, 그는.. 아니 그녀 역시 진정한 모습을 찾게 됩니다.
헤드윅이 이츠학을 자유롭게 보내줍니다. 그러나 다시 찾아온 이츠학과 함께 헤드윅은 다 함께 "손을 들어"달라고 노래합니다. 관객이 좋아하든 말든 자기 이야기만 하던 헤드윅이 말이죠. 이츠학의 노래를 인정하더니 마지막에 결국 이츠학 뿐만 아니라 관객 들과 모두 함께 노래합니다.
7. 지구를 구하는 것은 역시 사랑?
사랑은 정말 위대한 것 같습니다.
사랑은 인간의 혼을 빼놓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니까요. 사랑만으로 누군가를 죽일듯이 덤벼들 수도 있고, 사랑만으로 누군가를 뼈속까지 안아줄 수도 있거든요. 사랑하기때문에 오해할 수도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화해할 수도 있죠. 사랑을 하면서 생기는 갈등도 역시 사랑하기 때문이고, 사랑을 하면서 행복한 것도 역시 사랑하기 때문이라죠.
굳이 여기에서 헤드윅을 남자다, 여자다라고 구분짓는 것도 무의미하겠죠.
사랑이란 여자에게든 남자에게든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를 주는 위대한 감정이니까요.
어느 작가가 자신이 쓰는 소설의 주제는 어쨌던간에 "지구를 구하는 것은 사랑이다!"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 작가의 소설은 사실... 굉장했거든요. 인물과 배경의 설정이 평범하지 않았다고...만 설명하겠지만요.
그 무시무시한 배경과 인물이 자라나는 엄청난 과정들.
감히 내가 생각할 수 없는 사건들.
헤드윅의 운명들.
하지만 헤드윅은 살아가요. 사랑을 찾아서.
8. 소중한 인간
헤드윅에게 측은함을 느끼지 않아요.
그의 인생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인생이 밑바닥 중에 밑바닥을 달려왔다고 하더라도
그의 불안정한 정신건강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구요.
그녀의 사랑을 찾는 대장정에 대한 결과가 미덥지 않더라도요.
반쪽을 찾아 갈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헤드윅이 존경스러워요.
헤드윅이 남긴 희망을 배웁니다.
희망을 놓지 않는건 사랑을 찾는 것 만큼 소중한 인간의 특성이니까요.
헤드윅이 좀 더 행복해지길 바라며. 2009.4.21
덧글.
공연이 끝난 뒤 헤드윅의 OST로 이루어진 또다른 락공연이 이어지는데,
이게 또 참 맛이다.
아 놔 ㅠㅠ
이런게 있는 줄 알았다면 오후시간대로 예매했을텐데...
아숩아숩 ㅠㅠ
열정적인 앙콜공연! 광분하는 관객과 배우!
아악 최고다 ㅠㅠ




